전남 여수 지역 사찰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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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8.♡.202.39) 댓글 0건 조회 23,046회 작성일 08-11-21 12:35본문
전남 여수 지역 사찰순례
영취산 흥국사(興國寺)
1. 창건배경
「흥국사사적기(興國寺寺蹟記)」에 따르면 “국가의 부흥과 백성의 안위를 기원하기 위해 경관이 좋은 택지를 택해서 가람을 창설했다.”, “이 절이 흥하면 나라가 흥하고 나라가 흥하면 이 절이 흥할 것이다.”라는 내용의 글이 있어, 사찰(寺刹)과 나라를 공동운명체로 여겨 세운 절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사적기」에 따르면, 흥국사는 고려 명종25년(1195)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창건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이 시기는 지눌이 팔공산 거조암에 머물던 시기임으로 사적기의 기록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창건주가 지눌이 확실하다면 신종 원년(1198) 지리산 상봉 무주암으로 옮기기 직전의 어느 시기로 추정할 수 있다.
흥국사는 몽고 침입으로 인해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조선 명종 15년(1560) 법수스님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다. 그후, 인조 2년(1624) 계특대사에 의해 중건되고, 숙종 16년(1690) 통일스님에 의해 다시 중창되었다.
흥국사는 임란 당시 승군(僧軍)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흥국사를 중심으로 활약한 승군은 수군(水軍)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여수에 있던 충무공 이순신을 중심으로 한 전라좌수영이 호남 수군의 본영 역할을 했으므로 흥국사의 의승수군(義僧水軍)의 다방면에 걸친 활약상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2. 산문 및 전각
* 산문(山門) : 일주문(一柱門), 천왕문(天王門), 법왕문(法王門)
* 주요 전각(殿閣) : 대웅전(大雄殿), 무사전(無私殿-명부전), 불조전(佛祖殿), 응진전(應眞殿), 팔상전(八相殿), 원통전(圓通殿) 등.
3. 보유 문화재
대웅전 : (보물 제396호)
대웅전 후불탱 - 석가여래영산회상도 : (보물 제578호)
흥국사 홍교(虹橋) : (보물 제563호)
금오산 영구암(靈龜庵) -일명: 향일암(向日庵)
* 암자명을 통해서 본 영구암의 내력
① 원통암(圓通庵) : 신라 선덕여왕 13년(644) 원효대사 창건 당시의 이름이라 하는데, 이를 통해 이 절이 관음도량임을 알 수 있다.
② 금오암(金烏庵) : 고려시대 윤필거사(尹弼巨師)가 수도할 때 금오산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③ 영구암(靈龜庵) : 거북을 닮은 지형적인 특징에서 유래한 이름인데, 암자는 거북의 등에 해당한다.
④ 향일암(向日庵) : 흔히 해돋이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로 알고 있으나 실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바라보자’는 의미로 강제로 부르게 한 데서 생겨난 이름이라고 한다.
⑤ 책육암(冊六庵) : ‘육근(六根)의 엉뚱한 행동을 경책(警策)한다.’는 뜻으로 ‘조심스럽게 공부함’에 비유한 이름이다.
※ 영구암이 자리한 돌산의 끄트머리에 있는 마을이 임포(荏浦)마을이다. 이 마을은 원래 ‘장성포(長成浦)’라 했는데, 금오산의 정기를 받아 장사(壯士)가 태어날 것을 우려한 일본인들이 거북이를 잡을 때 사용하는 콩 임(荏)자를 써서 ‘임포’라고 바꾸었다고 한다.
※ 금오산의 바위들은 표면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줄무늬가 드러나 있는데, 전하는 말로는 이것이 거북이 등에 씌어진 불경(佛經)이라고 한다.
참고문헌
한국문화유산답사회, 한려수도와 제주도, 도서출판 돌베개 (경기 파주,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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